소리판의 중심 추 : 세상을 흔드는 소리가 여기 들었느니라, '부채'


옛부터 이르기를

김치 못 담그는 여편네는 있어도 부채 못 쥐는 광대는 없다 하였으니!

부채를 쥐었으면, 밥 값은 못해도 꼴값는 해주는 것이 광대의 길이렸다


이리 팔랑 저리 활짝 부채를 널어쥐고 얼쑤! 하는 신명에 이 한 몸 내 맡기니

이 사람을 웃었다가 저 사람을 울었다가 내쳤다가 감았다가

웃을 때는 울려주고 울을 적엔 웃겨주고 욕 헐때는 절씨구 좋다!

덩실 덩실 세상과 어깨동무하며 한 판 놀다가는 광대의 인생

이렇게 한 계절 지나가도, 이렇게 한 세상 살다가도 그 아니 좋을시고

알리 어질더질



아직 못 다한 이야기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명예교사의 물건 시리즈.

2013년, 겨울 마지막으로 찾아뵌 명예교사는

창작 판소리 <똥바다>로 유명하신 소리꾼 임진택 선생님입니다.



'판소리를 두고 사람들 하는 말이 다 달라요. 문학하는 사람은 서사시라고 하지.

연극하는 사람들은 모노드라마라고 하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가창이다, 성악이다 그러고.

뮤지컬이네, 듀오 드라마네 말들이 참 많지만, 다 답이 아니야.

판소리는 판소리일 뿐.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는 미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것이에요, 판소리는.'

_ 명예교사 임진택 소리꾼


소리꾼 임진택 명예교사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어렵게 고르신 소중한 물건은 바로 부채였습니다.

판소리를 뮤지컬도 아니고 성악도 아니고, 연극도 아닌

판소리 그 자체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중에, 부채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말씀이셨어요.


 


' 연극 무대는 일방형이죠. 근데 소리 판은 원형이에요.

사람들이 빙 둘러있죠. 우주의 무대입니다. 그러니 공간 개념이 다르죠.

그 무대 속으로 사람들을 잡아당기고 끌어당기는 것. 그 힘!

광대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역동, 변화, 그 힘의 역학관계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부채예요. 중심인 거지.

줄 타는 사람이 줄 위에서 부채로 중심을 잡는 것처럼, 소리꾼도 마찬가지야.'



지금 들고계신 부채는 창작 판소리 <남한산성>을 하실 때, 드셨던 부채라고 합니다.

유현복화백님이 그려주신 남한산성도로,

웅장하고 무게있는 화풍이 작품하고 딱 맞아 떨어졌다고 해요.



이 부채는 창작 판소리 <백범 김구>를 위해

임옥상 화백님이 그려주신 것이구요.

작품을 하실 때마다, 작품에 맞는 다른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시는 데요,

소리판에서 부채는, 소도구로서 소리꾼의 모든 도구가 되어주기 때문에

그 작품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방자가 춘향이의 연서를 들고 달려와, 도련님~ 하고 부르면

이도령이 읽기 전에 어디보자 허면서 편지를 펼쳐드는데, 그때 바로 부채를 탁! 펴드는 것이지요.

심봉사가 청이를 찾으러 나가서 더듬 더듬 더듬 더듬 청아~ 어딨느냐, 하며

지팡이를 더듬더듬 할 때는 지팡이가 되었다가,

흥보가 박을 탈 때는 부채살이 톱이되어서 슬근 슬근 스르렁 스르렁 톱질하세~.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_ 명예교사 임진택 소리꾼



오늘 저희가 준비해 간 마지막 질문은,

선생님께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선생님은, 예술이란 존재에 대한, 생명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탄압과 억류에 굴하지 않고, 살아나야만 할 때,

그때 그 생명력을 표출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바로 예술이라고 하시네요.


'김지하 시인이 저 그림을 내게 그려주시면서 그래요.

지구는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돌아간다. 다만 사람들 귀에 안 들릴 뿐이다.

그런 엄청난 소리, 어마어마한 소리. 세상을 쥐고 흔들어 사람들을 일깨울 우주의 소리를 해라.

소리는 노래가 아니에요. 절규입니다.

노래는 부른다고 하지만, 소리는 지른다고 하잖아요?

자기 내면에 있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내면적 통찰을,

뱃 속 깊이, 단전 아래에서부터 끌어올려 내 치는 것이 소리죠.

세상을 쥐고 사람들을 흔드는 소리.' _ 명예교사 임진택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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