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리는 진정한 소리꾼 박애리와 함께 떠나는

마음치유의 여정"


소리꾼 박애리 X 예술감독 원일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우리 음악, 마음을 잇다> 대담 및 강연이 1128일 수요일 오후 7, 광주 음악산업진흥센터 피크뮤직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문화예술 명예교사 <우리 음악, 마음을 잇다> 강연 및 대담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로 8회 남도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과 2013 KBS 국악대상 대상 및 판소리상 등을 수상한 소리꾼 박애리님이 명예교사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또한, 대담자로서 2012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 수상했으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하신 예술감독 원일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소리꾼 박애리 명예교사는

급속하게 변해가는 빠른 시대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바탕으로

판소리의 가능성을 펼치고 있습니다."

(원일)




Q. (원일) 판소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박애리) 아버지께서 공무원이셨는데 7남매 중에 맏이셨어요.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어요. 목포 시립 국악원에서 당시 2천 원이면 소리를 배울 수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거길 다닐 수 있게 하셨죠. 그곳에서 판소리에 매료가 되어, 9살 때 처음으로 소리를 배우게 되었어요.




 

Q. (원일) 판소리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A. (박애리) 사람의 목소리로 하는 일이잖아요. 어렸을 때는 목이 쉬었다가 풀렸다가 반복되는 과정을 겪으며 학습을 했는데 대학교 3학년 때 목이 잠기더니 한 달, 두 달, 반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소리를 하고 있지만, 고음이 나오지 않아서 음역 차제가 확 낮아졌죠. 그래서 목소리 자체가 굉장히 거칠어졌어요. 옛 명창들이 내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 연습을 하다가 목이 넘어갔다’, ‘목이 주저앉았다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그런 시간이 2년이 넘게 지속됐죠

그때 지금은 돌아가신 박송희 선생님께서 제 목소리를 듣고 다 그럴 때가 오니 한 달, 두 달은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그때까지 소리꾼은 쉬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달 동안을 가만히 쉬었어요. 그랬더니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꽉 잠겨있던 목이 풀려있더라고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마냥 파고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멈춰서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Q. (원일) 오늘 이후에 박애리라는 판소리 예술가에게 기대할만한 일은 무엇인가요?


A. (박애리) 올겨울부터는 완창했던 소리를 중심으로 지금의 내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음반 작업을 해요. 향후 10년까지 적어도 현존하는 판소리를 가지고 하는 다섯마당의 완창 무대는 가져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적어도 이 사람이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소리도 그림처럼 누군가에게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이 되고

감성을 이해해야 그것이 발현되죠.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박애리)





대담 중간에 박애리 명예교사의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판소리를 통해 울고 웃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관객들은 박애리 명예교사의 표정, 몸짓, 소리를 따라가며 감동을 받았고 치진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Q. 팝핀현준은 판소리를 하는 박애리 명예교사에게 어떤 남편인가요?


A. (박애리) 용기를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결국 하나로 통하는 거잖아요. 남편과 저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자리 잡고 있어요

제가 불특정 다수가 보는 매체에 출연해도 괜찮을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예술가니까 할 수 있다고 말을 해줬어요. 이만큼 쌓아놓은 완성도 놓은 공연을 무너뜨리고 언제라도 다시 다른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게 예술가 아니냐고 말을 해주었죠. 그 말을 듣고 나 스스로 어느 정도의 틀 안에서 나를 가둬놓고 안주하려는 모습이 있었다는 생각을 깨닫게 되었어요. 끊임없이 예술가로서 저를 자극해주는 사람이에요.

 

 

  

Q. (원일) 요즘 젊은이들이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잖아요. 박애리 명예교사도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나요?


A. (박애리) 어렸을 때는 소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밖에 못 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훌륭한 명창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가 소리를 하는데 관객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잘 안 들린다,'라는 것이었죠. 너무나 함축적인 고어/한시 가사 때문이었죠. 그때 함께 공부하던 몇몇 소리꾼들이 아이들도 쉽게 알아듣고 따라부를 수 있는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도하게 됐어요

저와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님, 최용석 대표님이 함께 <바닥소리>라는 팀을 만들었어요. 공연장에 와서 공연을 볼 수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공연장에 찾아올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우리가 찾아가는, 저 바닥에서 소리하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였죠. 그렇게 창작 판소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만들었던 작품이 <토끼와 거북이>였어요.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하는 내용을 판소리로 만든 거죠.

 




 

 

"지난 4월에 완창 판소리 춘향가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습니다

춘향가를 한 대목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불렀더니 쉬는 시간 20분을 포함해서 여섯 시간 반이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관객분들도 두 시간짜리 영화 보는 것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Q. 완창 판소리를 하려면 어떤 준비가짐이 필요한가요?


A. (박애리) 사람들은 서 있기만 해도 힘든데 여섯 시간 동안 소리를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말을 많이 하세요. 여섯 시간 동안 완창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집중적인 연습 과정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런지 전 그날 완창무대를 하면서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던 것 같아요.






 


<관객과의 Q&A>


Q.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인정받아오기까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나 비결이 있으신가요?


A. (박애리) 슬럼프는 한번 찾아오고 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학병원을 찾아갔어요. 목을 좋게 유지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는데 왜 이럴까 하며 하소연을 했죠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잘 나오지 않을 나이가 된 거라 말씀하시는 거예요.(웃음)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해서 빨리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그 슬럼프를 극복할 방법이더라고요. 욕심내지 않고요.





"소리라는 게 무대에서 잠깐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 너머에 굉장히 특별한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전통 판소리에 더욱더 매료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음악으로 내가 당신을 만났다.

오늘의 특별한 하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https://youtu.be/dRY2XV_uuhQ)을 참고해주세요!


문화예술 저명인사 또는 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는 또 다음 명예교사님을 모시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내 인생을 변화시킬 특별한 순간, 문화예술 저명인사와의 특별한 만남.

블로그 이미지

특별한하루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의 블로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