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이 보여주는 국악의 확장과 진화"


거문고 연주가 허윤정 X 예술감독 원일


 




 

하루하루 사소한 행복을 맞이할 수 있는 기분 좋은 하루를 만끽할 나날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인생을 변화시킬 특별한 순간문화예술 명예교사의 열두 번째 이야기 <국악의 확장과 진화>

11월 17일 주말 토요일 오후 3, 아트선재 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 및 대담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이수자로 현재 북촌창우극장 대표이자 서울대학교 국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거문고 연주가 허윤정님이 명예교사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또한, 대담자로서 2012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냈고,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 수상,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신 예술감독 원일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거문고가 연주하는 우리 음악을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린 장본인이 허윤정 명예교사에요."

(원일)









"저는 거문고를 설명할 때 타임머신 같다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요.

단숨에 천 년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거죠."

(허윤정)








Q. (원일) 거문고를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A. (허윤정) 어떻게 보면 운명적으로 만났어요. 전혀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 만나게 되었죠. 제 아버지는 마당놀이와 마당극을 만들고 정립하신 분이에요. 아버지께서는 한국적인 연극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배우들이 탈춤, 타악기 등을 모두 배웠어야 했어요. 그 당시 저는 아버지를 따라 연극 연습실을 가서 같이 있다가 늘 밤늦게 돌아왔거든요. 그러니 전통음악이 저한테는 음악적인 모국어였던 거죠.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무용을 배우게 되다가 그것을 악기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거문고라는 악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직감적으로 이 악기가 나에게 맞다’, ‘소리가 좋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죠.

 



Q. (원일) 거문고라는 악기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허윤정) 거문고가 긴 직사각형 위에 줄이 얹어져 있잖아요. 이러한 악기 형태를 외국어로 지더(zither)’라고 해요. 거문고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더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저는 거문고를 설명할 때 타임머신 같다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요. 단숨에 천 년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거죠. 그런 (태초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악기에요.







Q. (원일) 허윤정 선생님과 사물놀이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A. (허윤정) 전통음악 안에서도 즉흥성이 살아있는 것은 '장단' 쪽이에요. 다른 음악은 악보화가 되어있는 것을 어떻게 잘 연주할까에 몰두한다면, 지금 타악기 연주들은 기본 장단을 주고 그것을 얼마나 잘 바레이션(variation)’할 수 있는가? 라는 부분이 연주 실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끊임없는 변주와 즉흥성을 요구하거든요. 그런 즉흥성을 타악을 통해 배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Q. (원일)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A. (허윤정) 어린 시절이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아버님께서 유명 드라마 PD로서 한창 주가를 달리실 때 돌연 그만두시고 극단을 차리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께서 생계를 꾸려 가셔야 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아무래도 위축이 되었죠. 다행히 , 고등학교 때 형편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음악인으로서는 30대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20대 때는 졸업을 하고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에 입단했어요. 3년이 지나면서 큰 포부를 안고 그만두었죠. 막상 그만두고 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일단 무대가 많이 없었고 거문고라는 악기가 비대중적이고 어려웠으니까요. 퓨전국악이 성행하고 있을 때도 거문고는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았어요

연주자로서 제일 힘들었던 건 연주를 하고 나서도 피드백이 없는 거예요. 난 전통음악이 너무 좋은데 전통음악만 가지고는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없으니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거문고 음악을 확장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이 있었어요.

  

 

 

토크 중간에 허윤정 명예교사의 거문고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연주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주방법을 더해 거문고라는 악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거문고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 세계로 확장하고 진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허윤정 명예교사는 장단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거문고 연주가입니다. 

타 연주가와의 압도적인 차이가 여기서 생겨나죠."

(원일)




  




"음악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생각해요."

(허윤정)





<관객과의 Q&A>

 

Q. 미래 국악공연 기획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허윤정) 기획의 시대는 이미 찾아왔습니다. 공연에서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서양음악이 아닌 국악을 전담하겠다는 기획자는 찾기가 어려워요. 좋은 기획자 없이는 좋은 공연이 나올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기획자가 좋은 연주자를 찾으려 하고, 좋은 연주자가 좋은 기획자를 찾으려 해요.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본인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위치만 평가하는 거죠. 좋은 기획자가 되면 좋은 연주자가 다가오게 되어있어요. 저도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기획자는 제가 먼저 찾아갔어요. 이러한 음악을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죠. 음악이 좋은가’, ‘좋지 않은가에 대해 공유하면서 나의 예술세계를 이해시키려 하고 감동을 주려 했죠

결국, 모든 것은 테크닉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인 거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접근하다 보면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있어요.

 





 

Q.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는데, 계속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까요?


A. (허윤정) 체력이 일단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무용을 하면서 매일 뛰었거든요. 그런 기본적인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저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거든요. 제 안에서 회복되는 무언가가 있나 봐요. 그런 기질적인 낙천성이 존재하기도 해요.






 


Q. 전통악기 피리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명예교사님은 국악기로 다른 장르의 곡을 연주할 때 악기의 특수성을 고려해 연주하나요?  그리고 국악기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그 한계가 궁금합니다.


A. (허윤정) 어느 하나로 일반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악기 하나를 어필하기 위해서 대중적인 음악을 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죠. 여러 장르의 음악 층이 하나의 문화예술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악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한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한계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존재하는 요인이 사람마다 다 다른 거죠. 모두 자기만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무엇이든 일단 해봐야 하는 거죠. 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 속 장르에서 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이야기를 드러내고 넓혀볼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국악이 나에게로 오다. 나는 더 나아간다오늘의 특별한 하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https://youtu.be/-lal2dCKcbY)을 참고해주세요!

 

문화예술 저명인사 또는 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는 또 다음 명예교사님을 모시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내 인생을 변화시킬 특별한 순간, 문화예술 저명인사와의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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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의 블로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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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두 사람

차진엽, 이랑과 함께 떠나는 진정한 를 찾는 여정"


명예교사 현대무용가 차진엽 X 대담자 가수/영화감독 이랑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현대무용, 음악으로 매료되다> 대담/강연이 1116일 금요일 오후 7, 부산 더케이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문화예술 명예교사 <현대무용, 음악으로 매료되다> 강연 및 대담에서는,

콜렉티브 A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 감독으로 활동했던 현대무용가 차진엽님이 명예교사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또한, 대담자로서 2017 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고, 웹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들>, <! 반지하 여신들이여>를 각본, 감독했고 작가로서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출판한 가수 겸 작가, 영화감독인 이랑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공연장을 벗어난 공간에서 새로운 안무를 선보이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 해나가는 현대무용가 차진엽과 가수이자 작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이랑 감독,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두 사람과 함께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을 떠나볼까 합니다.

 


차진엽 명예교사님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이야기를 시작으로 특별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아티스트나 일반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본인 자체는 특별해지고 싶잖아요.

one of them보단 only one이 되고싶은 거죠."

(차진엽)



 






Q. (이랑)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 감독으로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A. (차진엽) 올림픽이라는 게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욕심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나라를 대표해서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해서 아직은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담당자께서 저에게 '이제는 젊은 세대들로 세대가 바뀌어야 한다.'라면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이 일에 동참해 보고 싶다는 제 안에 욕심이 생겨났죠. 물론, 굉장히 힘들었어요. 2년 동안 준비를 하는 긴 과정이 있었으니까요.

 

 

Q. (이랑) 춤에 관해서 이게 내 직업이라고 인식이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요?

 

A. (차진엽) 제가 무용을 7살 때 시작을 했어요. 좋아서 시작하게 됐고, 쉬지 않고 계속해왔어요. 이 직업에 대한 생각의 전환점이 생겼던 것은 2004년에 해외 무용단에 입단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프로페셔널한 마인드가 없이 규칙적이지도 않은 생활에서 그냥 열정을 다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 삶을 돌아볼 시간이 없이 달리기만 했었던 거죠

입단해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월급을 받고 내 집을 갖게 되면서 처음으로 직업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의 일은 춤이 된다>

춤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서 제작했던 지원 사업 프리젠테이션 제목이에요."

(이랑)





대담자 이랑은 일상 속의 동작들을 현대무용으로 만들어 뮤직비디오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무대에서 하는 크고 어려운 동작 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움직임들까지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내가 어제 밤을 새면서 작업을 했다.' '새벽 몇 시까지 했다.' 

예술가들은 이런 경험담을 훈장처럼 생각하죠.


그리고 사람들도 '역시 예술은 그런 시간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며 떠받들어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런 건 착각이고 환상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명쾌한 해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랑)

 

 

 

차진엽 명예교사와 이랑 대담자의 대화를 통해 예술과 일상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확고한 가치관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차진엽 명예교사는 앞으로 예술이 그런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주변을 깊이 있게 관찰하다 보면 내 장르가 아닐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접목이 돼서 자기의 작업이 확장되잖아요

앞으로 예술이 그런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과의 Q&A>

 


Q. 이랑 님의 '가족을 찾아서'라는 노래가 처음 떠올랐을 때의 심정이 지금의 심정과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노래에서 이야기 하는 가족을 찾으셨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A. (이랑) 저는 가족이라는 말도 현대사회에서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그 의미에 따라 법이나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지금 제 상황에서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제 가족처럼 지내고 있고, 지금 결혼 제도에 적합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 비혼주의인 사람들, 혹은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기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제 머릿속에 있던 가족이라는 말이 혈연가족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음악도 취미로 한 적이 있고, 어렸을 때 춤도 춰본 적이 있고, 지금은 건축공부를 하는 학생입니다. 창작이랑 관련된 여러가지 분야를 경험하면서, 창작을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무엇이 좋은 음식인지', '무엇이 잘 추는 춤인지'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는 '네가 좋다고 느낀느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말을 해 왔는데, 정말 좋고 나쁜 게 개인의 선택인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차진엽) ‘리버런이라는 작품에서 안무의 콘셉트는 막춤이었어요잘 추고 싶지 않았고멋있는 춤을 추고 싶지 않았어요

쉽고 간단한 동작도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을 것 같고내가 어려서 흥이 나 추었던 몸짓들도 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무용의 기술들로 봤을 땐 저게 무슨 춤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런 심경으로 작업을 했던 작품이거든요.

 

A. (이랑저는 좋다’, ‘나쁘다’, ‘인디’, ‘메이져라는 말들은 소위 말하는 착각이라고 생각해요내가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렇게 구분 짓는 말들이 없어질 거로 생각해요차진엽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 일상에서 보이는 것들나에게서 떠오른 질문이나 눈으로 보는 것을 표현하고 있잖아요창작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과정을 공유하면서 그러한 부담감을 없애주기 위해 워크숍이나 수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자꾸자꾸 더 공유하고, 보고, 직접 해보면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나의 장르가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는 가치가 피어나던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특별한 하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https://youtu.be/htyro4gRXx0)을 참고해주세요!


문화예술 저명인사 또는 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는 또 다음 명예교사님을 모시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내 인생을 변화시킬 특별한 순간, 문화예술 저명인사와의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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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연결 과정을

아날로그와 디지털 건축 기록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


근대건축연구자 안창모 X 건축도시데이터 분석가 김승범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기록을 다루는 건축가들> 대담/강연이 119일 금요일 오후 7, 서울 아름지기 사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구 서울역사(문화역서울 284) 복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14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신 근대건축연구자 안창모님이 명예교사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또한, 대담자로서 2016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부큐레이터와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작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VW LAB 소장이신 건축도시데이터 분석가 김승범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건축에서는 역사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역사는 설계와 건축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해요."

(안창모)







안창모 명예교사와 김승범 대담자. 

두 분 모두 과거의 데이터를 중심에 두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정반대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안창모 명예교사는 아날로그 상태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읽어내서 역사를 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면, 김승범 대담자는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는 수많은 숫자로 표현되는 것들,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선으로 개별적인 변화들을 보여주면서

전체까지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작업입니다."

(김승범)

 








"<50만 개의 점>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2016년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업에서 사용했던 그래프입니다.

2016년 당시에 존재했던 서울의 건물들 50만 개를 점 하나하나로 연결한 작업물입니다."









"이 사진은 종로의 풍경입니다. 가운데의 종로 거리의 폭이 굉장히 넓죠.

지금으로 치면 자동차 4차선 도로 폭이에요."


"이러한 도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선의 수도인 서울의 역할이나 규모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할 수 있어요."

(안창모)








안창모 명예교사와 김승범 대담자가 보여주신 하나하나의 사진과 그래프, 데이터와 함께 듣는 건축의 이야기는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건축기록들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연결된 시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관객과의 Q&A>

 

Q. 지금 하는 일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A. (안창모) 원래 꿈은 건축가였습니다. 현역 입대 대신 건설회사에서 병역을 대신 하는 기간산업체 특례라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해외 근무를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을 하는 동안 설계를 하고 싶은 마음은 꾸준히 있었어요. 병역기간을 마치고 대학원을 들어갔을 때, 내가 설계를 잘하려면 석사 논문을 쓸 때 어떤 논문을 쓰는 것이 내가 설계를 할 때 도움이 될까?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오늘이 있게 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했을 때 저는 그게 '전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의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라는 주제가 저의 석사 논문이었어요

그걸 하다 보니 전쟁 전후의 월북한 사람에 관한 공부, 일제 강점기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북한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제가 베니스비엔날레의 서울 평양관 전시가 가능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Q.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A. (안창모) 자기가 좋은 걸 하는 것이 가장 오래 할 방법이고, 오래 하다 보면 길이 있습니다.

 






Q. 통일되면 서울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A. (안창모) 보다 쉽고 빨리 바뀔 수 있는 부분이 한강이라고 생각해요. 한강은 폭이 1km 되는 매우 큰 강이에요. 하지만 한강은 우리나라의 도시에서 아무런 역할이 없잖아요

한강은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에 기여한 것이 없어요. 한강 하구가 DMZ 라인에 걸려있기 때문에 물류의 기능을 잃어버렸어요

통일이 되어 DMZ 라인만 걷어지면 한강 하구를 통해서 쉽게 개성에 갈 수 있고 그 사람들도 올 수 있겠죠. 그래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저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실제 프로젝트나 계획에 있어서 작업하신 내용이 도움이 되었던 특별한 사례가 있으신가요?


A. (안창모) 역사에 기록된 부분을 보면 대한제국은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고종은 무능하다고 얘기가 되어왔었는데, 제가 근대를 공부하면서 당시에 도시와 건축을 보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고종의 모습으로는 도시에서 일어났던 여러 일들이 해석되지 않는 거예요

당시에 서재필 박사가 만들었다고 하던 독립문이 서재필 박사가 만든 것이 맞을까?하는 의심을 하다 보니, 서재필 박사가 아니라 고종이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그 당시 대한제국의 개항이 강제 개항인가? 라는 것을 도시와 건축에 연구를 통해서 보니까 그것이 강제 개항이 아닌 것 같다는 연구에 도달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프로젝트나 연구를 통해서 대한제국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도시를 재해석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도시가 과거의 어떠한 모습과 삶의 흔적들인지 만나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이 내일이 기록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특별한 하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https://youtu.be/6P97ec7k7vI)을 참고해주세요!

 

문화예술 저명인사 또는 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2018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는 또 다음 명예교사님을 모시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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