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두원 명예교사와 함께 그리는 청각 크로키

˚。˚ 소리를 그리다 ˚。˚




드라마의 단골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죠.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나다운 게 뭔데?"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죠?

'나는 누구일까?' '나다운 건 뭘까?'

누구나 한 번쯤해 고민해 봤을텐데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게 '나'인 것 같지만,

내가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도 들게 마련입니다.





'나'라는 이름보다 무리 중 누군가가 되고, 그 안에서 살다보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그리고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런 고민을 가장 많이 할 때가 바로 청소년기가 아닐까요?

20여평의 교실 안에 3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0학년 0반, 0번으로 불리며

"나중에 대학가면...."으로 모든 것을 미뤄버리고, 어른들이 정해놓은 시간표와

'학생답게'라는 통제속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시기.

어른들은 "그 때가 제일 좋을 때야."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때.



나는 튭다...하지만 내 몸이 추운 건 심장이 시린 것보단 참을만 하지.... 후☆

침착해. 상대는 일☆반☆인 이라구 by여린쨔응

혜원이의 뭐숩에 눈물이 흘러 멈튤투가 헙다...☆



하지만 이 시기야 말로 자기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더 고민해야 할 때 일텐데요.

그럴 때, 나보다 앞서 걸어간 인생 선배를 만나는 것만큼 큰 힘이 되고, 도움되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만나러 왔습니다.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 다른 표정, 다른 영혼의 빛깔인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

2014년 첫번 째 시간. '소리를 그리다'가 찾아온 곳은

삶의 이정표를 '그림'으로 정하고 첫발을 내딛은, 경기예술고등학교 미술반 1학년 아이들입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두원 명예교사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칠판에 그림을 그리셨는데요,

무슨 그림일까요?

바로 들개인데요, 이두원 명예교사의 별명이 바로 들개였대요.

화가의 자기 소개 방법은 역시 색다르죠?

머리도 길고, 야생미가 폴폴 풍겼다는 이두원 명예교사.

그런데, 이건 무슨 반응?







'풉! 들개라니! 야생마라니!' 고개를 숙이고 실소를 터트리고 맙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예 대놓고 깔깔깔 웃습니다.


"내가 두 달동안 그림 그리고, 전시하느라 기가 쪽 빠져서 그렇지, 진짜 별명이 들개였다니까!"라고

이두원 명예교사께서 아무리 힘주어 얘기해도, 아이들의 반응은 변함이 없네요.




 

아.... 정말 살이 쪽 빠지셨네요.

작업하는 내내 자신의 내면 속으로 하염없이 침잠하며, 예술 작품으로 표현해 내며

예술가로 산다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인가 봅니다.

그래도 구레나룻는 여전히 야생미를 폴폴 풍기고 있습니다. ㅎㅎㅎ :D





들개 그림에 실소를 터트리는 아이들을 보시더니, 칠판에 다른 그림을 그리셨는데요,

새와 곤충으로 표현한 이두원 선생님의 자화상이였어요. 전혀 닮지 않은!


"그림을 꼭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비슷하게 그렸다고 해서 잘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못그려도 좋은 그림이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즐기면서 그려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즐기면서 그린 그림,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다른 사람도 좋아해요. 

하지만 내가 즐기지 못한 그림은 다른 사람도 좋아하지 않아요. 

물론 재능도 중요해요. 근데 재능은 노력해서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즐기지 못하는 건 마치 칼을 뽑는 법만 배우고 어떻게 휘두르는지 모르는 것과 같아요.

오늘은 잘그리려고 안 해도 돼요. 즐기세요. 어렸을 낙서하듯이 무심히 그리다보면 자신의 무의식 안에 있던 여러분만의 선이 나올 거예요."

_화가 이두원 명예교사



자, 이제 준비됐겠죠~?

상상력을 마음 껏 펼칠 준비 말이에요!

잊지 말아야 할 것!

어렸을 때 즐기면서 그림을 그렸듯이 즐겁게~ 낙서하듯이~!!





아! 그 전에 이분의 소개가 빠졌네요.

'소리를 그리다'에 빠져서는 절대! 안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음악을 연주하시는 최영두 기타리스트예요.

현재 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로 활동하며 음반작업과 공연, 라디오 출연 등 쉴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데요, 

2013년 '소리를 그리다'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으셨기에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





'띠리링~' 시작 사인에 맞춰 음악이 시작되고, 이두원 명예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신나게 춤추듯이~

지휘자가 연주를 하듯이~

이두원 명예교사께서도 이 시간을 즐기고 계시네요.  ^^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머릿속 이미지를 떠올리는 아이도 있고

바로바로 음악이 들리는대로 즉흥적으로 손이 가는대로 그리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어떤 방법이든, 마음가는 대로, 손이 가는대로 상상력을 표현한다면 모두 대환영입니다!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떠올랐을까요? 혹시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아닐까요?

음,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미생때문인지, 바둑알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소리를 그리다'는 음악 듣고 상상력을 표현한 것이기때문에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자만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기도 한답니다.






'소리를 그리다'는 연주에 맞춰, 3분, 2분, 1분 크로키(빠르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로 진행되는데요,

재료는, 빠르게 다양한 선을 표현할 수 있는 먹물이에요.

한번 선을 그으면 절대로 지울 수가 없고, 빨리 자신이 원하는 선을 그릴 수도 있지요.


"지우개를 쓰지 않는 연습을 하세요. 선을 잘못그렸다고 생각하면, 그 선에 다른 상상력을 더해서

연결해서 그리세요. 일필휘지!! 잘못 그은 선은 없어요. 쉼없이 그림을 그리다보면, 횟수가 늘어날 수록

처음에 잘 그리려고 했던 마음이 밀려나며 무의식의 선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올 거예요."

_화가 이두원 명예교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처음엔 여기저기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는데요,

화첩을 채워가는 그림이 많아질수록

오직 음악 소리와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만 들립니다.


아이들이 모두 그림 그리기에 열중해 있는데, 쉬는 시간 종이 울렸어요.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소리를 그리는 시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이때!



 

 

"으! 쟤네 뭐 신나는 거 하는 거 같은데?"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지 옆반 아이들이 유리창에 코를 박고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소리를 그리는' 아이들의 10분 휴식시간

도저히 못참겠는지......


 

문을 열고 물어봅니다.

"야~ 너네 뭐해?"

음악소리는 들려오지,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정신이 팔려 있지..

어지간히 궁금했나봅니다.  ^^



그러더니 기어코 교실로 쳐들어 와서

"왜 우리반은 안해요!!!" 하고 따지네요. ^^;;

옆반 친구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인증샷이라도~~~





내가 그린 그림도 인증샷을!!

미술반이기 때문에 그림을 자주 그리지만, 오늘은 그린 그림은 좀더 특별한가 봅니다.





친구의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어요.

같은 음악을 들었지만, 나와 다른 그림을 그린 친구들이 마냥 신기한가봅니다.

하지만, 아직 문이 활짝 열리지 않았나봐요.

소리를 그리다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그릴 때는

대부분 선이나 점 등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두원 명예교사께서 상상력의 침 한방을 놓습니다.

선생님이 머릿속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걸 보면, 아이들이 한층 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시범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소리를 듣고 떠오르는 느낌을 선으로 그려도 되는데요,

음악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려도돼요. 바다, 우주, 행성까지...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어요.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려보세요."_ 화가 이두원 명예교사





띠리링~ 다시 음악이 시작되었어요.

이두원 명예교사의 상상력 침을 맞았으니 이제 좀 더 다양하고 색다른 그림들이 나오겠죠?

어디 한번 살펴볼까요?





음~ 역시 이두원 명예교사의 시연을 보고 난 후에 아이들의 그림이 더욱더 풍부해졌네요.

시연을 보기 전에는 주로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들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나자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구체화시켜 그리기 시작합니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화첩에 그은 선 하나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림이 완성되기도 하는데요,

물결을 그렸다가, 주름살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렸을까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그린 그림일까요?

미소를 짓는 행복한 노부부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경쾌한 음악이 찰래채플린의 걸음걸이를 생각나게 했을까요?

구체화된 이미지들이 점점 화첩을 채워갑니다.

어떤 그림을 그렸을 지 궁금하시죠?

드디어, 발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재기발랄함이 담긴 그림, 순수한 감수성이 묻어난 그림, 깊은 고민이 묻어나는 그림 등

저마다의 색깔이 듬뿍 묻어나는 그림을 선보였는데요, 

함께~ 보시죠~~~





이두원 명예교사께서 자신의 그림을 발표하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서 선물로 준다고 하시자

냉큼 달려나와 첫 번째로 소개를 한 남학생인데요,

무엇을 그린 건지 짐작이 가시나요?

바로, 콜라병이었답니다. 음악이 청량하게 들렸고, 그러자 시원한 콜라가 마시고 싶어져서 그린 그림이래요.





이 그림은 절대로 못 맞히실 거예요. 상상도 못하실 걸요.

털이 북실북실 나 있는 사람 몸에 들어가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진드기랍니다.

정말 상상력이 뛰어나죠? ^^





갈퀴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말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 같지 않나요?

활발하고 역동적인 음악이 해안가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같아서 그린 그림이래요.





하품하는 하마를 그린 아이는 마치 하마같이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네요.

하~암. 낮잠이라도 자려는 걸까요?





물 먹는 기린을 그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동물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나봐요.

왠지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동물원이 아닌,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인 것 같아요.

이런 그림들을 제치고, 이두원 명예교사의 들개 본성을 끌어낸 아이가 있었는데요, 





바로 최영두 기타리스트를 그린 남학생이었어요.

"왜 나는 안 그리고, 최영두 선생님만 그리는 거야!!!" 하며 이두원 명예교사께서 폭풍 시샘을 하였답니다.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한 여학생이 얼른 이두원 명예교사의 얼굴을 그렸어요.





포스터에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요, 어때요? 닮았나요?

"너는 발표라며 안해도 내가 그림 꼭 그려줄게!"라며 이두원 명예교사께서 어찌나 기뻐하시던지요.




 

약속대로 이두원 명예교사께서 발표를 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학생들이 그려달라고 하는 것을 즉흥적으로 그려내시며, 마지막 남은 기(氣)까지 몽땅 쏟아부으셨는데요,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든 그림 한점이 있었으니...





손을 그려달라는 여학생의 손을 다짜고짜 잡더니 화첩에 대고 쓱쓱 그립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팔목을 잡힌 아이도, 옆에서 보고 있던 아이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

"꺄르르~ 꺄르르~" 교실이 낭랑한 여고생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손을 그린 그림에, 눈과 부리를 그리자 날아가는 새가 되었지 뭐예요.





"앞으로 날아가는 새처럼 너의 꿈을 마음껏 펼치라고 그려준 거야."_이두원 명예교사


의미깊은 선물에 마음도 얼굴빛도 불게 물들었습니다.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요...




 

사랑에 빠지면 모든 촉감이 활짝 열리며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는데요,

화가 이두원 명예교사와 함께한 '소리를 그리다'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모든 오감을 열고, 마음 속 이야기를 그리며 조금은 더 깊숙히 자신과 만나는 시간.

셜리 맥클레인(영화배우)가 이런 말을 했대요.

'일생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는 바로 자신과의 관계이다.'


자신의 영혼의 색을 발견하고, 표현한 시간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안경을 쓴 것 같은 특별한 하루

'소리를 그리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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