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 (Grill)
그릴 앞에 수십년 서게 되면,
요리사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레시피다.
말 한마디만 해도, 간을 보고 숨만 쉬어도, 음식이 된다.
며느리에게, 아기 젖먹이라 이르는 노인처럼,
칼날 내려치는 소리만 들어도 완성도를 아는 대장장이처럼.
그러니 수십 년간 내가 쉼 없이 구워온 것은,
수천 킬로그램의 고깃덩이가 아닌, 요리사라는 나 자신.
아직 못다한 이야기
인터뷰의 첫 질문은 이것.
‘레스토랑 이름 [인스턴트 펑크]가 무슨 뜻인가요?! ’
그리고 돌아온 박찬일 명예교사의 대답입니다.
‘아무 뜻도 없습니다. 폼 잡는 이름은 나와 어울리지도 않고,
이런저런 뜻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내 성질에 안 맞고요.
원래는 [미원 - 다]로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너무 장난스럽다고 해서 [인스턴트 정크]로 가려고 했더니,
이번엔 손님을 놀린다고 해서 그것도 패스.
근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인스턴트 펑크]라는 흑인 그룹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지금 나오는 노래가 그 사람들 노래예요.
노래도 좋고 재밌어서, 그냥 그렇게 지었어요.
그러니까 아무 의미 없는 게, 이 레스토랑의 콘셉트예요.’
아무 의미 없다는 그 말씀과,
내주신 수제 티라미슈 케이크의 환상적인 맛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식당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 그저 맛있으면 최고지.
인생이 우연의 연속이고 사랑하는 데 조건이 없는 것처럼.
의미란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그날 우리가 대접받은 케이크는,
잠시 철학자가 되게 하는 마법의 케이크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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