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의 고향 : 재즈의 세계를 열어준 '트랜지스터 라디오'


얘야, 너 낡은 내 라디오야. 너는 낡고 나는 늙었구나.

너와 내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나눠 듣던 빛나던 밤들이,

이제는 너무나 옛날 일이 되어버렸어.

그러나 모든 것은 사라지기에 아름답다. 삶도, 사람도, 라디오의 시대도.


사람들은 그러겠지. 늙은 게, 금방 죽을 게 말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건방떠는 놈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고, 드럼이 너무나 치고싶구나.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니겠니. 스틱을 놓기 전까진 언제나 질기고 뜨겁고 본능적인 것.

인생은 재즈, 바로 그 것이었어.




아직 못 다한 이야기


'어서와요. 반가워요.

아. 너무 춥다. 그쵸? 날씨까지 이렇게 환장하게 추우면

헐벗고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야, 이게.

커피 한 잔씩 해요. 너무 추워.' _ 명예교사 류복성 재즈 뮤지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찾아뵈었던,

명예교사 류복성 선생님과의 '아직 못 다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내가 처음 악기를 연주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밴드부에서 들어가서 아침조회 때 애국가, 운동회 때는 행진곡. 그런 걸 연주했지.

근데 이게 1959년 얘깁니다. 그때부터 시작할라믄 지금부터 밤을 꼴딱 새도 모자란데,

56년치 이야기를 언제 다 하겠어요.' _ 명예교사 류복성 재즈 뮤지션


두 시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들려주신 이야기만도,

추려 담을 수 없을 만큼 드라마틱한 사연들이 많았는데요,

6.25 때 목판걸고 엿장수 했던 이야기,

통일호 물수건 배달부로 첫 취직을 했던 이야기,

미8군쇼 밴드보이 시절, 간신히 빌린 드럼교본을 밤새 필사했던 이야기 등등

이 곳에 다 싣지 못하는 것이 속상할 정도예요.



'이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가지고 있던 바로 그 라디오예요.

어느 날 라디오를 틀었는데, 뭐가 나왔냐. 마일스 데이비스의 [Straight, No Chaser]!!

그걸 듣는데 갑자기 머리에 번개가 와서 쾅! 꽂혀.

이거로구나. 내가 지금은 밴드부에서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지만,

앞으로 지구촌에서 해야할 음악은 바로 이거로구나.

그러니까 이 라디오에서 시작된 거지. 류복성의 재즈는.' _ 명예교사 류복성 재즈뮤지션



56년 전의 그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 계신 것도 놀라웠지만,

심지어 그 라디오가 아직까지도 작동한다고 하네요.

사진 촬영을 위해

세월의 흔적이 얼룩으로 고스란히 남은 라디오를 받아들며,

우리를 위해 정말 소중한 물건을 꺼내주셨구나, 

감사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



그리고 물건 인터뷰를 다니다보면,

작업실로 취재를 갈 일이 참 많은데요,

누군가 기억에 남는 작업실을 묻는다면

앞으로는 아마 류복성 선생님의 작업실을 꼽게 될 것 같아요.

너무나 신기한 악기들이 많아, 한참동안 즐겁게 구경했거든요.

탬버린부터, 드럼, 퍼커션, 카우벨, 슬레이벨...

세상의 모든 타악기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어요.



거기에 선생님의 즉흥 연주를 듣는 행운까지.

정말 잊지 못할 인터뷰였습니다.

참! 사실 선생님의 이 연습실 겸 작업실은,

한달에 한 번씩 콘서트장으로 변하기도 해요.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들어보고 싶다'하셨던 분이라면

이 곳을 방문해 주세요.

공연 일정이 자세하게 나와있답니다. :)


www.류복성.net


그럼, 오늘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씀을 끝으로,

[명예교사의 물건] 열 여섯 번째 이야기.

마칠까 합니다. :)



'난 지독한 딴따라입니다.

평생을 하고 싶은 음악하면서 살았고,

음악을 못할 때는, 맨 주먹으로 밤새 아스팔트라도 두들기면서 살았어요.

돈이 주머니에 들어왔다 하면, 죄다 LP판만 사제끼고.

첫 사랑이랑 자장면에 배갈 한 도꾸리 나눠먹으면서 헤어질 때, 그이가 그러더라고요.

야, 이 음악에 미친 놈아. 허허허. 그냥 음악에 미친 사람. 그게 류복성이에요.

거장 어쩌구 하는데 아니야. 그냥 거지지, 뭐.' _ 명예교사 류복성 재즈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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