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마지막 달에 떠나는 아날로그 감성여행
【 살며 여행하며 느끼며】
높이 뜬 해는 겨울산을 밝게 비추고,
잘 닦인 장독대는 맑은 하늘을 담아내는 한 낮.
동강에는 에스키모인들이 소풍을 나왔습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다들 뭔가를 적고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니
겨울 산을 그리고 있군요.
채 얼지 않은 겨울 강 옆에 자리를 잡으신 오경환 선생님.
앉아계신 모습만으로도, 이미 한 폭의 그림이네요.
' 금강산은 봄에 가장 아름답기에 금강산이라하고
설악산은 겨울에 특히 경치가 빼어나다 하여 설악산이라고 합니다.
눈이 하얗게 내려않은 가운데, 나뭇가지며 바위같은 산의 개골이 드러나니
그 산의 본 생김새를 알 수 있는 데다가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초목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화려했던 풍경이
하얀색과 짙은 갈색의 무채색으로 변해 여백의 미를 더하니,
저 역시, 굳이 설악산이 아니더라도 겨울의 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_ 우주화가 오경환 명예교사
가마솥의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라 구름이 될 때쯤.
겨울 바람에 손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미처 수첩에 옮기지 못한 풍경을, 마음과 눈에 담아가지고 돌아왔어요.
구들장 가득-
사각 사각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 들려오는, 이상한 오후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우리는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네요.
그저 아랫목 한 켠에 마음을 올려놓은 듯 평온하고 따뜻하게 -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 계절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
한가로이 자유시간을 보내고,
점심에 다들 챙겨온 간식이며 귤까지 두둑히 먹고나니,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나는 늦은 오후가 되었어요.
어젯밤, 캐럴이 울려퍼졌던 난롯가에 모여 앉아,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님이신,
명예교사 박종만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평소에 드시는 커피잔을 하나씩 가져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어디 어떤 컵들을 가져오셨는지, 한 번 구경해봅시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었죠.
스타벅스 커피잔을 들고 도심을 활보하건,
영화시간 전에 커피숍에 들려 시간을 때우건,
커피는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자리잡은 일종의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커피에 관심을 갖고 커피를 안다는 것은,
하나의 문화를 알고 배우고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_ 명예교사 박종만 커피박물관장
작은 원두 한 알의 향을 맡아보고
호호 불어가며 잘 로스팅해서
찬 겨울바람에 쉐킷 쉐킷!
오경환 선생님도 쉐킷 쉐킷!
어느새 갓 구운 향이 그윽한, 원두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구들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여과지를 접는 것부터 천천히 따라해 봅니다.
주전자 주둥이를 빙글 빙글 둘러가며,
조로록 - 커피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퍼져나가는 커피향을 음미하며,
마주 앉은 친구와 커피 한 잔을 기울이는 시간.
'제가 처음 나눠드린 원두는 다 같은 원산지에서, 같은 날 수확한 것입니다.
그런데 로스팅하고, 찬 바람에 식히고,
물을 내리는 과정에서 누구의 손길을 거쳤는지에 따라
아마 지금은 전부 다른 맛이 날 겁니다.
허니, 그림 그리는 일과 커피를 내리는 일이 그리 다르지 않지요.'
_ 명예교사 박종만 커피박물관장
짝꿍이 내려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여행 친구들을 위해 가져온 책을 꺼내듭니다.
가만 가만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본 일도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직장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의 이야기에 함께 눈물짓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쑥쓰러운 감사인사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에 미소짓기도 하고..
귀퉁이를 접어둔 책 한 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서로의 마음에 밑줄을 그어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한 명의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은지도 모르겠어요.
삶의 한 페이지 페이지마다,
설레임에 밤잠 못 이루던 로맨스가, 스펙타클한 청춘 자서전이,
부모님에게는 스릴러였을 유년 시절의 방황기가..
녹아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서로를 위한 격려의, 축하의, 위로의 한 마디 대신
힘찬 박수로 마음을 전하는 이 밤.
겨울 하늘에 총총히 뜬 별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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